못읽은 노트

피터 싱어/ 동물 해방 중

peppi 2025. 5. 12. 14:09

아이에게는 생명권을 승인하고 다른 동물에게는 승인하지 않는다는 근거로 단지 호모 사피엔스인지의 여부를 사용할 경우, 그것은 전적으로 종차별주의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가장 노골적이고 공공연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인종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논변과 같은 유형의 발상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종차별주의를 피하려면 개를 죽이는 것과 충분한 능력을 소유한 인간을 살해하는 것이 똑같이 잘못되었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생명권의 경계선을 우리 종의 경계와 정확히 일치시키는 자만이 구제불능의 종차별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만이 존엄하다는 견해를 옹호하는 자들은 방금 언급한 바와 같은 입장을 취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분명하게 구분하면서도 우리 종 안에서의 구분은 그 어떠한 것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상인을 살해하는 것 못지않게 심각한 정신 지체인과 가망 없는 고령의 사람들을 살해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

 

어떤 기준을 선택하건 우리는 그 기준이 우리 종의 경계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어떤 존재의 어떠한 특징이 다른 존재들에 비해 그 존재의 생명을 가치 있게 만든다는 입장을 정당하게 견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기준으로 가늠해 보아도 어떤 인간 아닌 동물의 생명이 어떤 인간의 생명보다 가치로운 경우가 틀림없이 있다. 가령 침팬지·개 또는 돼지는 심각한 결함을 가진 아이나 고령의 노쇠한 상태에 있는 사람보다 자기 인식 능력이 뛰어나며 또한 그들에 비해 다른 존재들과 의미있는 관꼐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더 많이 갖추고 있다. 그리하여 방금 언급한 바와 같은 특징들에 생명권을 기초지운다면 우리는 이러한 동물들이 결함을 가지고 있거나 노쇠한 사람들과 유사한, 또는 그 이상의 생명권을 갖게 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거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즉 이와 같은 논거는 침팬지·개·돼지 외에 어떤 다른 종의 동물들이 생명권을 가지며 그들을 죽일 경우(그들이 늙고 고통을 받고 있으며, 우리의 의도가 그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에 있을지라도) 그것이 도덕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임을 보여주는 데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선택지로는 위의 논거가 심각한 결함을 갖는 자들과 가망이 없는 고령의 인간은 생명권이 없으며, 현재 우리가 동물을 죽이듯이 사소한 이유로도 그러한 인간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요 관심사는 동물과 관련된 철학적 문제이지 안락사의 도덕성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 안락사 문제를 완결짓고 넘어가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가 방금 언급한 두 가지 입장이 종차별주의를 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양자 모두 만족할 만한 입장은 분명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도적 입장이다. 여기서 중도적 입장이란 종차별주의를 피하면서 결함을 갖는 자들이나 노쇠한 자들의 생명을 현재의 돼지나 개의 생명만큼 값싸게 간주하지 않는 입장을 말하거나, 또는 돼지와 개의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여 그들을 극도의 비참함 속에 몰아넣는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을 말한다. 우리는 인간 아닌 동물들을 도덕적 관심의 영역 내로 영입해야 하며, 그들의 생명을 소모품 처리하듯이 다루지 말아야 한다. (...)

 

고통은 고통을 느끼는 존재의 다른 특징의 영향을 받아서 해악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반면 생명의 가치는 여타 특징들의 영향을 받는다. (...)

 

어떤 경우이건 이 책에서 옹호하는 결론들은 오직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리로부터 도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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